비트코인은 중앙은행이 발행하지 않는 탈중앙화된 디지털 화폐로, 일부 국가는 이를 법정화폐로 채택하는 과감한 결정을 내렸다. 그래서 오늘은 비트코인을 법적으로 채택한 국가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2021년 엘살바도르는 세계 최초로 비트코인을 법정화폐로 인정하며 기존의 미국 달러와 함께 공식 화폐로 사용하기 시작했고, 이후 중앙아프리카공화국도 비트코인을 법정화폐로 채택했다. 그러나 이 결정에 대한 논란은 여전히 뜨겁다. 비트코인이 국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과 실질적인 효용성을 놓고 각국 전문가들의 의견이 엇갈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글에서는 비트코인을 법정화폐로 채택한 국가들의 사례, 그들의 성공과 실패 요인 분석, 그리고 비트코인의 법정화폐로서의 미래 가능성을 살펴보겠다.
비트코인을 법정화폐로 채택한 국가들의 사례
엘살바도르: 세계 최초의 실험
엘살바도르는 2021년 9월 세계 최초로 비트코인을 법정화폐로 채택하며 글로벌 금융 시장에 큰 충격을 주었다. 나이브 부켈레 대통령은 비트코인이 국가 경제 성장과 금융 포용성을 높이는 수단이 될 것이라고 주장하며, 비트코인 거래를 법적으로 보호하고, 공식적인 결제 수단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비트코인법'을 시행했다. 정부는 국민들에게 비트코인을 쉽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치보(Chivo)라는 디지털 지갑을 개발하고, 초기 사용자들에게 30달러 상당의 비트코인을 지급했다. 또한, 국가 차원의 비트코인 매입을 지속하며, 장기적으로 가치를 상승시켜 국가 경제에 기여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중앙아프리카공화국: 두 번째 비트코인 법정화폐 국가
엘살바도르에 이어 중앙아프리카공화국(CAR)도 2022년 4월 비트코인을 법정화폐로 인정했다. CAR 정부는 금융 접근성이 낮고, 달러화 거래가 어려운 상황에서 비트코인을 통해 경제 자립을 이룰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CAR의 경우 전력 공급이 불안정하고 인터넷 보급률이 낮아 비트코인을 일상 거래에 사용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또한,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은 이러한 정책이 금융 시장의 불안정을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성공과 실패 요인 분석
비트코인 법정화폐 정책의 장점
비트코인을 법정화폐로 채택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송금 비용 절감이다. 엘살바도르의 경우, GDP의 약 20%가 해외 송금으로 이루어지며, 국민 상당수가 미국에서 일하며 돈을 송금한다. 기존의 국제 송금 시스템은 높은 수수료와 긴 처리 시간을 요구하지만, 비트코인을 사용하면 송금 비용을 거의 0% 수준으로 낮출 수 있다. 또한, 은행 접근성이 낮은 국가에서는 비트코인이 금융 포용성을 높이는 역할을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엘살바도르 국민의 약 70%가 은행 계좌를 보유하지 않지만, 스마트폰과 인터넷만 있다면 누구나 비트코인 거래가 가능하다.
실제적인 문제점과 도전 과제
하지만 이러한 정책이 성공을 거두기 위해서는 몇 가지 중요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첫 번째 문제는 가격 변동성이다. 비트코인은 하루에도 수십 퍼센트의 변동성을 보이는 자산이므로, 안정적인 결제 수단으로 기능하기 어렵다. 엘살바도르에서는 비트코인을 통한 결제가 가능하지만, 변동성이 큰 비트코인을 실제 거래에서 사용하는 국민들은 많지 않다. 많은 상점들이 법적으로 비트코인을 결제 수단으로 받아야 하지만, 환율 변동으로 인해 가격이 급격히 변할 위험이 있어 대부분의 거래는 여전히 미국 달러로 이루어진다.
두 번째 문제는 국제 사회의 반대다. IMF와 세계은행은 비트코인을 법정화폐로 채택한 국가들에게 지속적으로 경고를 보내고 있으며, 엘살바도르가 비트코인 채택 이후 IMF로부터 구제 금융 지원을 받기 어려워진 사례가 있다. 또한, 국제 신용평가사들은 비트코인의 법정화폐 채택이 국가 신용등급을 낮추는 요인이 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세 번째 문제는 기술적 인프라 부족이다. 비트코인을 사용하려면 안정적인 인터넷 환경과 전자 지갑 사용이 필수적이지만, 많은 개발도상국에서는 이러한 인프라가 충분히 갖춰지지 않은 경우가 많다. 중앙아프리카공화국의 경우 전체 인구 중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는 비율이 10% 미만이어서, 비트코인을 법정화폐로 활용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한 수준이다.
비트코인의 법정화폐로서의 미래 가능성
비트코인이 향후 더 많은 국가에서 법정화폐로 채택될 가능성은 존재하지만, 그 과정은 쉽지 않을 것이다. 현재까지 비트코인을 법정화폐로 도입한 국가는 경제적으로 취약한 국가들이며, 주요 선진국들은 비트코인의 불안정성을 이유로 법정화폐로 인정할 계획이 없다. 그러나 일부 전문가들은 비트코인이 글로벌 금융 시스템에서 점차 더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비트코인이 법정화폐로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스테이블코인(stablecoin)과의 연계가 필요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국가가 비트코인을 법정화폐로 채택하면서 동시에 비트코인 기반의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한다면 변동성 문제를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다. 또한, 비트코인 결제 인프라가 더욱 발전하고, 사용 편의성이 개선된다면 실생활에서의 활용도 증가할 가능성이 있다.
또한, 중앙은행 디지털 화폐(CBDC)와의 공존 가능성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중국과 유럽연합은 이미 중앙은행 디지털 화폐(CBDC)를 개발하고 있으며, 비트코인이 법정화폐가 되기보다는 특정한 금융 시스템 내에서 보조적인 역할을 할 가능성이 더 높다는 분석도 존재한다.
비트코인의 법정화폐 실험, 성공할 수 있을까?
비트코인을 법정화폐로 채택한 국가들은 송금 비용 절감과 금융 포용성 확대라는 긍정적인 목표를 가지고 있지만, 높은 변동성, 국제 사회의 반대, 기술적 한계 등 현실적인 문제에 직면해 있다. 현재까지의 사례를 보면, 비트코인이 국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아직 긍정적이라기보다 실험적인 단계에 머물러 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디지털 화폐 기술이 발전하고, 더 많은 국가가 블록체인 기술을 적극적으로 도입한다면, 미래에는 비트코인이 법정화폐로 자리 잡는 국가가 더욱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 다만, 기존 금융 시스템과의 조화를 이루는 방향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크며, 완전한 법정화폐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다.
한국사례
한국은 비트코인을 법정화폐로 채택하지 않았지만, 가상자산 시장의 건전한 발전과 이용자 보호를 위한 다양한 정책과 규제를 시행하고 있다. 2021년을 기점으로 국내에서도 비트코인과 같은 가상자산에 대한 관심이 급증하였고, 이에 따라 금융당국은 시장 안정화와 투자자 보호를 위한 법적 장치를 마련하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정책으로는 2024년 7월 19일부터 시행된 「가상자산 이용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 있다. 이 법안은 가상자산사업자의 신고 의무화, 이용자 자산 보호 강화, 이상거래 감시 의무 부과, 불공정거래행위 금지 등을 포함하고 있어, 가상자산 시장의 투명성과 안정성을 높이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또한, 2025년부터 시행될 가상자산 관련 세법 개정안에 따르면, 가상자산 양도차익에 대한 과세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질 예정이며, 이를 통해 정부는 가상자산 시장을 보다 제도권 내로 편입하고자 한다. 한편, 최근에는 가상자산을 외환보유고에 포함하는 방안이 일부 정치권에서 논의되고 있으며, 이는 비트코인을 법정화폐로 직접 채택하지 않더라도 국가 차원에서 비트코인을 제도적으로 활용할 가능성을 시사한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비트코인의 법적 지위에 대해 신중한 입장을 유지하고 있으며, 중앙은행 디지털 화폐(CBDC) 개발을 통해 가상자산 시장과 기존 금융 시스템의 균형을 맞추려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이에 따라 향후 한국의 비트코인 정책은 규제 강화와 제도적 수용 사이에서 조율될 가능성이 높으며, 글로벌 규제 환경과 시장 변화에 따라 그 방향성이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